구태여 멋을 부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태가 나고, 몰입되는 아우라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무인양품은 그런 사람과 잘 어울린다. 셔츠에 제 로고를 큼지막하게 찍어내지도, 노트에 현란한 그래픽을 그려 넣지도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분명히, 다른 것들과 구별이 된다. 무엇도 자랑하지 않겠다는 그 태도가, 왠지 안전하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그런 무심한 멋을 동경해 무인양품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2달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직원 할인도 쏠쏠히 써먹었다. 스트라이프 티셔츠 세 장, 네이비색 반팔 티셔츠 한 장(핏이 정말 마음에 든다), 여러가지 간식들(바움쿠헨과 초코 크림 비스킷을 가장 좋아했다), 가성비가 훌륭한 그물백, 반투명 플라스틱 필통, 스프링 노트 두 권. 잠옷을 사지 않은 것은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은 점이 있다면 늘 같은 노래만 재생된다는 거였다. 그건 내가 일하던 영풍문고점이든, 신촌점이든, 김포공항점이든 다르지 않다. 이 세상에 들을 만한 노래가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이런 단조롭고 가사도 없는 노래일까. 주말마다 7시간씩 계산대 앞에 서서 하던 생각은 그런 것뿐이었다. 일한 지 2주 쯤 지나가던 시점부터 진작 그 노래에 질렸다. 다른 노래였다면 한 달은 더 다녔을 거라 확신한다. (물론 농담이다)
그리고 파리. 영현이 가고 싶다고 했던 작은 독립 영화관에서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보고 나오던 길이었다. 목적지 없이 걷던 우리는 상상치도 못하게 거리 한복판의 무인양품을 만났다. 파리에도 무인양품이 있어? 그게 뭐라고 가득 반가워서 신이 난다. 천연덕스럽게도 내 발이 그곳에 향한다. 몇 시간의 긴 여정을 뚫고 도달한 파리에서 들어가보기로 마음먹은 곳이 고작 무인양품이라니. 하지만 나에겐 고작이 아니었다. 파리의 무인양품에서는, 서울의 무인양품과 같은 음악이 흘러 나온다. 는 사실 하나 때문에. 나는 이 먼 땅에서 1년 전쯤 질리도록 들었던 멜로디를 다시 만났다. 어떤 날에는 지루하다고 생각하던 그 노래. 덕분에 철저한 이방인인 나도 이 낯선 도시를 한껏 반가워할 수 있다.
어디를 가도 제 멜로디는 꿋꿋이 지킬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자. 이 마음이 달갑다. 라는 문장을 언젠가 무인양품에서 샀던 스케치북에 끄적인다. 흔한 로고 하나 없는, 베이지색 표지만이 유일한 특징인 A5 스케치북. 뻔뻔할 만큼 여전한 것들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이 볼펜도 무인양품에서 샀던 거네... 문득 생각했다.
그리고 짧은 파리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