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가장 부러워했던 여자애는 그런 아이였다. “나는 커서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래!”라고 외치는 아이. 어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조금 자란 나도, 여전히. 누군가를 소개할 때, 꽤 쉽게 멀끔한 단어를 골라내곤 하지만, 나의 아빠에 관해서는 그것이 어렵다. 아빠는 무뚝뚝하고, 무심하고, 퉁명스러운 사람. 아빠를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은 고작 이런 것들. 조금은 서운하게 느껴질 법한, 차갑고 딱딱한 단어들. 우리는 대화한다. 어떤 날엔 사진 한 장, 어떤 날엔 문장 하나. 2월 8일엔 “큰 줄기에서 뻗어나올 잠재력있는 사람”, 6월 19일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시, 10월 22일엔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과 “뭐해”. 우리의 원칙, 답장은 한 번만.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도 서운해하지 말기. 가장 최근에 끝난 연애에서야 깨달은 바는, 나 또한 만만찮게 무뚝뚝하고, 무심하고, 퉁명스러운 사람이었다는 거.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엄하게 아꼈다. 하트 모양 이모지는 낯 간지럽다는 이유로 애써 피했다. 대신, 그 사람을 떠올리며 들었던 노래의 링크나 우연히 읽게 된 좋은 글을 캡쳐해 코멘트 없이 슬쩍 보내곤 했다. 어쩌다 코멘트를 덧붙이게 되어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 따위의 짤막하고 밋밋한 문장. 다 지나고 난 뒤 문득 알았다.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내가 아빠와 얼마나 많이 닮아 있는지,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빠가 내게 물려준 것. 무뚝뚝한 말투. 마음과 반대로 굴기. 좋아하는 문장 보내기. 답신에는 대답하지 않기. 말장난을 좋아하기. 아빠를 이해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할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아이는 아니다.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무심한 말씨, 작은 얼굴과 큰 손을 가진 남자에게 약하다. 그 안에 간직하고 있는 마음이 궁금해서 당해낼 수가 없다.
런던행 비행기에 타던 날 아침,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아빠로부터 온 것이다. 뜨문뜨문 1분씩 전화로 근황만 전하던 사람이 어쩐 일로, 꽤 오랜만에 긴 문장을 보냈다.
2022년 11월 8일 오전 9시 1분
런던을 느끼려면 산책을 해야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나에게는 이렇게 보였다.
2022년 11월 8일 오전 9시 1분
조심히 다녀와
사랑해
사랑해
아빠는 나의 영원한 무뚝뚝한 남자. 어떤 사랑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꼭 필요하지 않다.
Best Regards,
G